경남 마산시에 있는 결핵 전문 치료기관인 국립마산병원에 입원 중인 김경숙(가명)씨는 28살의 젊은 나이지만 현존하는 10가지 결핵약에 모두 내성을 보이는 ‘난치성 결핵균’과 생사를 건 마지막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던 지난 1998년 폐결핵 진단을 받고 7년째 투병 중인 김씨는 지난달 커다란 동공성 병소가 생긴 오른쪽 폐의 아래쪽 3분의 1을 잘라내는 두번째 폐절제수술을 받았다.
황수희 마산병원 흉부내과 과장은 “김씨는 지난 2002년 왼쪽 폐를 위쪽으로 절반 잘라내는 첫번째 폐절제수술을 받은 뒤 병세가 호전되는 듯하다 다시 도졌다”며 “폐절제수술은 두 차례 이상 하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수술이 병세를 반전시키지 못하는 한, 김씨는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김씨의 이런 불행은 애시당초 난치성 결핵균에 감염됐기 때문에 생겼다는 게 마산결핵병원 쪽의 분석이다. 결핵약 복용을 중단하는 등 치료를 게을리해 결핵균의 내성을 키운 게 아니라는 뜻이다.
김씨는 결핵 진단을 처음 받았을 때 3개월 동안 1차 결핵약을 먹었지만 차도를 보이지 않아 다제내성 환자라는 판정을 받았고, 이어 2차 결핵약으로 바꿔 약 4년 동안 꾸준히 복용했는데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두 차례의 폐절제수술을 하게 됐다.
다제내성 결핵균은 1차 결핵약 4가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아이나’와 ‘리팜피신’에 내성을 보여 6가지 2차 약으로 치료해야 하지만 치료효과는 1차 약에 미치지 못한다. 1차 약은 표준치료기간이 6개월이지만, 2차 약은 2년으로 더 길 뿐만 아니라 부작용도 더 많기 때문이다. 김씨처럼 2차 결핵약으로도 치료가 안되는 사람은 난치성 결핵환자로 분류된다.
황수희 과장은 “마산병원에서 입원 중인 280명의 폐결핵환자 가운데 40% 정도가 다제내성이고, 다제내성의 절반인 50여명은 난치성이다”며 “치료를 받지 않는 다제내성 환자는 한해에 20명의 새로운 다제내성 환자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황 과장은 이어 “마산병원의 다제내성환자는 10명 가운데 1명꼴로 처음부터 다제내성 균에 감염된 것으로 분석된다”며 “이런 경우에는 규칙적으로 열심히 약을 먹어도 1차 결핵약 치료에 실패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와 대한결핵협회 분석으로는, 우리나라에 아직도 해마다 새로운 결핵환자가 6만명씩 발생하고, 전체인구의 0.4%인 18만명이 결핵을 앓고 있으며, 하루평균 9명 이상씩 연간 3352명이 결핵으로 숨지고 있다. ‘결핵 후진국’의 오명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결핵정보감시체계(TBnet.nih.go.kr)에 신고된 우리나라의 결핵 신환자는 3만687명(폐결핵 2만6940명·87.8%, 폐외결핵 3747명·12.2%)이지만, 보건당국에서는 민간의료기관의 신고 누락 등을 고려해 연간 신환자 수가 2배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의 공식집계된 결핵 신환자는 인구 10만명당 64명 꼴로 일본의 10만명당 25.8명보다 2.5배, 미국의 인구 10만명당 5.2명보다 12.3배 높다.
고원중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결핵 신환자의 10%는 1차 치료제 가운데 아이나 내성으로, 2~3%는 다제내성으로 추정된다”며 다제내성 결핵균에 감염될 가능성이 적지 않음을 지적했다. 한해 기준으로 6만명의 결핵 신환자 가운데 1200~1800명이 1차 약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다제내성 균에 감염돼 다제내성 환자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다제내성 균 가운데 일부는 김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1, 2차 치료제에 모두 내성을 갖고 있는 난치성 균일 가능성이 높아 일단 감염돼 증상을 일으키면 병의 진행을 막을 수 없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알레르기센터 교수는 “보통의 결핵균이 내성을 갖는 원인은 약제 남용, 조기치료 중단, 불규칙한 약물 복용, 잘못된 약제 선택 등을 꼽을 수 있다”며 “특히 다제내성 결핵의 치료는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일반적 결핵환자는 3~4가지로 구성된 1차 약을 6개월 동안 계속 복용할 경우 완치율이 98%에 이르지만, 다제내성 환자는 1차 약 가운데 내성이 없는 약과 2차 약 6가지를 포함해 최대 7~8가지 약을 2년 동안 꾸준히 복용해도 완치율이 7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안영진 기자
도움말=고원중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정기석 평촌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알레르기센터 교수, 황수희 국립마산병원 흉부내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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